자꾸 그러는 게 이민역 슬슬 짜증 나지. 혼자 있으면 노래도 안 듣는데 유기연 때문에 달라진 게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노래가 이민역의 마지노선이었잖아. 이민역 대답도 잘 안 하다가 애가 계속 그러니까 왜. 딱 이렇게 한 마디 하고 말아.
유기연은 이민역 점점 기분 안 좋아지는 거 보이니까 눈치 보다가 별다른 말 못 하지. 이민역은 애가 왜 이러나 싶어. 어제까지만 해도 혼자서 노래 틀어놓고 흥얼거리면서 가던 애가. 결국 그 뒤로 둘이 한 마디도 안 하고 학교 도착한다.
근데 애가 학교 도착해도 내릴 생각을 안 하는 거야. 가방끈만 자꾸 만지고 안절부절 하는 것 같은 거. 그게 유기연한테 딱히 관심이 없는 자기가 보기에도 애가 이상한 게 딱 보여. 한 마디 하려다가 순간적으로 이민역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거.
돈이구나. 이민역은 애가 돈이 필요한데 부모님한테 말을 못 한 거구나. 이렇게 생각해. 이민역 그게 뭐 어렵나 싶고 그렇지. 바로 자기 지갑에서 현금 꺼내서 애한테 쥐여준다. "필요하면 말을 해. 답답하게 돌려 말하지 말고." "어... 응, 형 고마워..."
유기연 이민역이 준 현금 들고 차에서 내리지. 손에 돈 쥐고 학교 들어가는 꼴이 자기 눈에만 이상해 보이는 건지. 애 교문 넘어서는 거까지 보고 차 돌린다.
사실 이날 이민역 아빠 생일이었음. 이민역은 바빠서 생각도 못 하고 있었지. 유기연은 이민역 기분 안 좋아 보여서 눈치 보다가 말 못 한 거고. 그러다 차에서 내릴 때 이민역이 돈 쥐여주길래 유기연은 이민역이 아빠 선물이든 뭐든 사라고 준 줄 알잖아.
학교 가서도 그 돈 잃어버릴까 봐 주머니에 잘 들어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지. 형이랑 같이 아빠 생일을 준비한다는 게 얘한테는 너무 특별하고 그래. 유기연은 점심시간 즈음에 이민역한테 문자하지. 형 나 오늘 학원 좀 빨리 마쳐.
그러고 이민역한테 알려준 시간 보다 더 빨리 나와서 맛있다고 소문난 곳 케익 하나 사잖아. 이민역한테 받은 돈으로 산 거긴 한데 그래도 뿌듯하지. 생전 처음 있는 아빠의 생일이잖아. 유기연한테는 이 처음이 누구보다 소중하단 말임.
유기연 빨리 마친다 해서 일하다가 나온 이민역만 의문임. 자기보다 빨리 나와서 자기 기다리던 애가 아닌데 이미 밖에 나와있고, 손에는 케익이 들려있고. 조수석 올라타자마자 노래부터 고르고 있는 애한테 묻지. 생일이면 아침에 있었던 그 모든 게 이해가 간다.
"너 생일이야?" 유기연 노래 고르다 말고 엄청 당황해서 이민역 보지. 눈동자 흔들리는 거 이민역 눈에도 다 보인다. "아빠... 생신이잖아..." 아.
이민역 아무말도 없이 입술만 쓸어. 그러면 유기연 또 형 눈치 보다가 그러지. "형이 돈 준 거, 아빠 케익 사라고 준 줄 알고... 알고 있는 줄 알았어..." 유기연 괜히 케익만 쳐다봐. 아침에 그냥 말할걸. 알고 있냐고 물어나 볼걸. 애는 또 후회하기 시작하지.
"그래서 아침에 그렇게 말 걸었어? 이거 말하려고?" 사실 이민역은 이런 거에 아무 생각이 없고, 이렇게 말한 것도 그냥 생각이 나서 말한 건데 유기연은 그 말 듣고 또 풀이 죽어. 그리고 이민역은 그제서야 훅 와닿지. 유기연이 진짜 가족이구나 하는 거를.
이때까지 애한테 관심도 없고 아는 거라고는 학교랑 이름 전화번호, 나이, 학원 어디 다니는지 그런 거니까 별로 가족 같지도 않았단 말이야. 이민역은 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유기연이랑 가족이 된다는 거 자체가 그렇게 끌리지는 않아. 애가 자기한테 귀염을 떠는 거랑은 다르잖아.
아, 별론데.
이민역이 말없이 운전하면 유기연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야. 갈수록 형 눈치만 보게 되는 것 같지. 무조건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형이랑 잘 지내고 싶은데 맘처럼 쉽지가 않아. 형 바쁘니까 잊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말해줬어야 했는데. 그냥 자기 행동 하나하나가 다 후회스러운 거.
이때까지 혼자 살아서 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려워. 심지어 나이도 훨씬 많은데. 집 들어가는 내내 아무 말도 없잖아. 차에서 축 처졌어도 유기연 집 들어가는 순간은 얼굴 펴고 밝게 인사한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면 엄마가 저녁 상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잖아. 가운데 빈 곳에 케익 상자 올려놓으면, 이제는 유기연의 아빠가 된 이민역의 아버지가 기연이를 안아줘. 이렇게 귀여운 아들이 생겨서 기쁘다. 고마워, 아들. 유기연 마냥 울고 싶잖아. 귓가에 아들이라는 단어만 맴도는 것 같아.
울컥 올라오려는 거 나름대로 싹 숨기고 배시시 웃으면 유기연 아빠도 기연이 보고 웃어줘. 그리고 한 발짝 뒤에서 그걸 지켜보는 이민역이있다.
"생신 축하드려요. 저는 미처 선물을 준비를 못 했는데." 이민역 뒷말은 안 해도 괜찮은데 자기랑 있을 때 그렇게 안절부절 하던 애가 생각이 나서 일부러 뒷말도 붙였잖아. 그리고 당연하게 유기연은 그 말에 당황한다.
잔뜩 당황해서는 어쩔 줄도 모르고 아니라고 이 케익 형이랑 같이 고른 거라고 거짓말 치고 있지. 이민역 아버지는 그럼 딱 한마디 해. 고맙다. 원래 이랬으니까 이민역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유기연만 울상이고 안절부절. "진짠데..." 애 거의 울 것 같지. 이제 표정 숨기지도 못해.
이게 뭐라고 유기연은 자기랑 아버지 사이에서 갈팡질팡. 유기연 입술 꼭 깨물고 있다가 밥 먹으라는 제 엄마 말소리 하나에 표정이 또 풀려. 식탁 중앙에 놓인 케익은 초에 불이 붙었고 유기연은 그거에도 기뻐하며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러. 그리고, 그 옆에 앉아있는 이민역.
기연과 기연의 엄마는 사이가 좋았으나 그렇다고 싸우지 않은 것은 아님. 기연은 자기 성적에 예민했고, 기연의 엄마는 기연의 성적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았음. 그래서 생기는 문제들로 인한 가벼운 말싸움이었음. 어느 가족이나 하는 그런 다툼. 근데 그게 둘만 있을 때 이뤄지지 않은 게 문제였지.
기연이 민역과 함께 집에 들어오자마자 대뜸 그러는 거야. "나 과외 받을래." 기연이 희망하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좀 더 연습이 필요한 상황이었음. 그런데 시간은 얼마 안 남았고 애는 속이 타니까 생각하고 생각한게 과외인 거.
"학원은 조금 그래." "과외를 해야겠어? 꼭?" "응. 이제 더 갈 수 있는 학원 없어." "음, 엄마가 생각을 좀 해볼 테니까 아들도 좀 더 생각을 해볼까?" 엄마의 이 말로 기연의 심기가 완전히 뒤틀린 거임.
엄마는 항상 자신의 성적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때까지 그러려니 하긴 했는데 고3인 이 시점에서까지 이러니 기연이 너무 속상하고 그렇잖아. "나 그럼 대학 가지 마?" 결국엔 말이 좋게 나가지 않지. 기연이 엄마는 거실에 앉아있는 이민역 아버지 눈치를 한 번 봐.
기연이는 지금 그런 거 신경 못 쓰잖아. 애 목소리 점점 커지려 하지. 기연이 엄마는 이민역도 있으니까 기연이 살살 말려. 그러다 기연이 엄마가 연습을 더 하면 안 되냐는 얘기를 꺼내게 되면 기연이는 답답하다는 듯이 알겠다고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지. 기연이 엄마는 한숨 쉬며 괜히 그러잖아.
"애가 성적 욕심이 있어서." 유기연 저러는 거 처음 보잖아. 자기랑 집에 올 때는 기분 괜찮았던 것 같거든. 이민역은 그런 기연이가 새로워. 그저 애교 많은 외동아들인 줄 알았더니 저런 면도 있었구나.
기연이는 결국 받고 싶었던 과외는 못 받게 되었음. 사실 기연이의 시간도, 과외를 받을 공간도 마땅찮았기에 이게 맞는 건데 서러운 거는 또 별개잖아. 기연이도 알아. 자기 욕심인 거. 근데 원하는 목표가 있으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고 싶지.
그래서 기연이 선택한 게 잠을 줄이는 거였음. 집에서도 연습을 자주 하던 애라서 수면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는데 거기서 더 줄여버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애 컨디션만 안 좋아 보이는 거. 유기연 말로는 괜찮다고 부모님한테 애교 부리는데 자기도 자기 몸상태가 안 좋은 거 다 알아.
아침에 이민역 차 타면 노래부터 틀던 애가 노래 틀 생각은 안 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거야. 이민역 기가 차지. 이민역 일하다 새벽 4시에 잠깐 나오면 유기연 방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에 애 몇 시에 자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음.
이렇게 아득바득하는 거 보면 애가 물러터진 성격은 아닌데 자기한테 하는 거 보면 영... 당돌한 면은 있었는데 그냥 그걸로 끝인 줄 알았잖아. 이렇게 자기 몸 깎아서 연습하고 그러는 거 보면 예고 아니면 안 된다며 울던 것도 생각이 나. 그때는 애가 맹랑해서 이러는 줄 알았지.
이민역은 이러는 거 보고서야 애가 꽤 진심이구나 하는 걸 느껴. 근데 진심이고 유기연의 욕심, 뭐... 그런 것과는 별개로 애가 잠을 못 자서 아파하는 게 보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재우긴 해야겠는 거.
이민역 학교 근처에 차 세워놓고 애 좀 더 자게 내버려 두잖아. 곤히 자고 있는 애 당장 학교 가라며 깨우기도 좀 그래서 9시까지 15분 남겨놓고 나서야 유기연 깨운다. 유기연 눈도 잘 못 뜨고 미안하니 고맙니 웅얼웅얼 거리면서 차에서 내리지.
애 교문 들어가는 거 보고 가려는데 애가 길바닥에 우두커니 멈춰 선거야. 이민역 차에서 내리려는데 유기연한테 가는 친구들 보곤 별 일 있겠나 싶어서 그냥 시동 걸지.
다들 가방에서 급하게 휴지 꺼내고 손수건 꺼내는 거 보면서 대강 느낌이 오잖아. 코피 났구나. 지금은 괜찮은지 애가 친구들한테 웃어주길래 이민역 바로 차 돌려서 출근해.
애가 온몸으로 컨디션 안 좋다는 티를 내더니 사달이 났음. 이민역 밥 먹으려고 회사 나왔을 때 학교에서 전화가 오잖아. 애가 아파서 데리러 오셔야겠다. 그 얘기 듣자마자 차 키 챙겨서 애 학교로 향하지. 학교도 점심시간인지 운동장에 학생들 엄청 많고 그래.
외부인인 이민역한테 시선 다 쏠리잖아. 운동장 걸어가며 유기연한테 전화한다. "너 어디야." "나 반에..." 반이라고 하면 아냐고. 애가 몇 반인지 그걸 이민역이 어떻게 알아. 애 피아노 치는 것도 최근에서야 알았는데. "형 나... 2반. 3학년 2반." 바로 전화 끊고 3학년 2반 찾아가지.
교실 문 열고 들어가면 어디가 유기연 자리인지 바로 보여. 애들이 둘러싸고 있으니까. 유기연은 책상 위에 엎드려있고 주변에서는 여자애들이 괜찮냐고 묻는 게 보이지. 이민역 그 꼴 보고 짜증 확 나잖아. 아침에 데려다줄 때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사실 아침에 유기연 어땠는지 기억도 안 나.
유기연 앞으로 가서 다짜고짜 유기연 흔들어 깨우면 갑자기 나타난 어른에 학생들 다 눈 동그랗게 뜨고 이민역 쳐다보지.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싶은 거 애가 앓는 소리를 너무 내니까 그러지도 못해. 더더군다나 사람들 앞이니까. 둘이서만 있는 차 안이랑은 다르잖아.
근데 유기연 그렇게 흔들어도 일어나지도 않아. 이민역 이곳에 한시라도 머물기 싫은데 애는 묵묵부답이고 골 때리지. 이민역 책상 한 번 크게 흔들면 유기연 엎드려서 짜증 확 내잖아. "아, 시발. 좀." 친구인 줄 알고 이러는 거지.
언제 일어나려나 보려고 이민역 말없이 엎드려있는 유기연 쳐다보면 괜히 유기연 앞에 앉아있던 애가 더 쫄아. "기연아. 야, 일어나 봐야겠는데..." 유기연 친구인지 뭔지가 그러면 유기연 인상 확 찌푸리면서 일어난다. 애가 얼굴이 발그스름한 게 상태 안 좋아 보이지.
인상 팍 쓰고 짜증 내던 유기연 일어나자마자 보는 게 이민역이잖아. 이민역 보자마자 표정 풀리지. 이때까지 친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이와중에 형이 와줬다는 거도 기쁘고.
"어디 아픈데." "나 몸이 그냥..." 애가 진짜 아픈지 짧게 말하는 그 순간에 유기연 눈에서 점점 눈물 차오르는 게 보이잖아. 일단 애 데리고 나가야겠어서 유기연 책상 옆에 걸린 가방 이민역이 든다. "조퇴하자. 교무실 어딘데."
유기연 결국 조퇴증 받고 나오지. 애가 아파서 열이 오르니까 애 옆에만 있어도 후끈한 것 같은 거야. 열이 많이 나나 싶어서 대강 애 이마 한 번 짚어보고 말없이 앞장서서 걸어나가지. 이민역 평소에 걸음 빠른 편인데 유기연은 그거 맞춰서 잘 걸어왔으니 이민역은 그냥 평소처럼 걸어.
근데 옆에 있던 애가 점점 걸음이 느려지더니 걷는 소리가 안 나는 거. 이민역 뒤돌아보면 결국 주저앉은 유기연 보이지. 애가 아프니까 평소에는 잘만 따라가던 이민역 걸음 못 따라가고, 거의 뛰다시피 하니까 힘들고 숨차서 그냥 주저앉은 거야.
유기연 지금 이렇게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 머리도 어지럽고. 그런데도 이민역은 애 억지로 일으켜 팔 붙잡고 끌고 가듯 한다.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 유기연 찍소리도 안 하고 터덜터덜 끌려가잖아. 이민역은 애 조수석에 밀어 넣고 운전석에 앉아. 담배 한 대 태우고 싶은데 아픈 애 앞이라 참는다.
애 끌고 오고 나서 보니까 입술도 다 트고 식은땀 흘리고 상태가 영 안 좋지. 일단 병원 데려가서 수액 맞게 하는데 애가 수액 맞으면서도 끙끙거리고. 좀 자라고 커튼 쳐주고 나와서 이민역 바로 유기연 엄마한테 전화하지.
기연이 지금 아파서 병원이고, 제가 볼 테니 안 오셔도 된다고 하면 기연이 엄마도 일하는 중이라 맘대로 갈 수가 없어서 민역이한테 고맙다고 한다. 이민역 회사에다가도 일이 생겨서 오늘 못 들어가니 다들 일찍 퇴근하시라 연락 해놓지.
애 데리러 가느라 못 받았던 연락들에 답장 좀 해주고 다시 유기연 보러 들어간다. 옆에 앉아서 이메일 확인이나 하고 있는데 그런 이민역 소매 슬쩍 잡아오는 유기연 있잖아.
"형 미안해." 그렇게 말하는 애 눈가가 열 때문에 벌겋잖아. 이민역은 그냥 애 입술 툭 치고 말아. 눈도 입술도 다 벌겋네. 자기가 나가고 나서 입술을 얼마나 씹어댄 건지 그 사이에 입술이 찢어져서 피나고 그래.
애가 아파서 그러고 있는데 이민역 시선 계속 유기연 입술로 간다. 한 번 의식하고 나니까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거. 시발, 별생각을 다 하네.
애가 수액 맞고 좀 괜찮아진 건지 아니면 더 아파서 이러는 건지 유기연 이민역 앞에서 긴장하고 눈치 보던 거 다 풀어져서 별 얘기를 다 해. 집 도착해서 주차장 돌고 있는데 갑자기 아프다고 칭얼거리지를 않나. 이민역 못 들은 척 자리만 찾고 있지.
빈 곳 겨우 찾아서 주차하는 와중에 유기연 졸음 쏟아져서 눈도 못 뜨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 얘기 꺼내는 거야. "우리 엄마는 나 아프면 항상, 자기 달라고 하고 그랬어..." 이런 헛소리도 다 하고. 이런 얘기 하는 거 처음 들어보잖아. 어지간히 아픈가 보네. "그래서."
유기연 상태 보니 얘 스스로 걸어가지도 못할 것 같지. 안아야 하나. 차 세웠는데도 안전벨트 풀 생각도 없어 보여서 벨트 풀어주려고 가까이 가는데 유기연이 그러는 거야.
"형은 아프지 마."
이민역 속이 뒤집히는 거 같아. 아픈 애 질질 끌고 그랬는데 하는 말이 이런 거라고. 병신도 이런 병신이 따로 없어. 원래 이렇게 순종적인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기연 입술만 보는 자기도 한심하지. "혀엉..." 아, 시발.
이민역 급하게 유기연 입술 찾아. 유기연 입술이 찢어져서 나는 비릿한 피 맛이 이민역 입 안에서도 맴돌았음. 입술이 겹치고 혀가 섞이자 유기연은 우는 소리 내잖아.
그러면서 이민역 몸을 힘도 안 들어가는 손가락으로 밀어내는데 이게 진짜 밀어내는 건지, 사람 간 보는 건지. 애가 딱 봐도 경험 없고 어리숙한 게 맞긴 한데... 그래도 일부러 이러나 이런 생각도 들어. 마음껏 유기연 입속 휘저어대고 떨어지면서 얘기해.
"어떡하지, 형도 아플 것 같은데."
이러면 유기연 볼 타고 눈물 뚝뚝 떨어진다.
아픈 애 데리고 하는 게 이딴 거. 뭐에 홀렸나 싶을 정도로 충동적이었고... 그날 아무렇지도 않게 애 약 챙겨주고 했는데 방에는 오래 머물지 못했지. 그야, 또 그러고 싶었으니까.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일들이 거의 없는데 왜 그랬나 자기도 후회 하긴 해.
유기연이 이걸 누구한테 말하기라도 해보라고. 생각하기도 싫다. 유기연 말고 다른 걸로 자기 욕구를 채우기는 해야겠는 거야. 그래서 이민역 친구한테 말해서 소개팅 받는다. 시간 겨우 빼서 소개팅 자리 나가면 단아하게 입은 여자가 인사해오지. 그냥 무난한 사람.
무쌍커풀의 눈매가 순해 보여서 아무 탈도 없을 것 같은 사람. 이민역 여자랑 며칠 후에 애프터 하고, 몇 번 더 만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계 가지게 되고, 사귀게 되고. 안 그래도 바쁜 일정을 사는 사람인데 여자친구가 생기니 더 바빠지잖아.
이민역은 퇴근하면 여자친구 만나러 가기 바쁘지. 나이가 나이니까 빼는 것도 없어서 진도도 쉽게 나가잖아. 그러다 보니 여자 집에서 자는 날도 많아. 그러니까 이민역은 점점 유기연한테 소홀해지는 거. 애 학교 데려다주고 집으로 데려오고 하는 것도 이제 점점 손에서 놓게 된다.
여자랑 막 사귀었을 때 유기연한테만 연락했었어. 일이 바빠서 혼자 다녀야겠는데. 이렇게 문자를 보내면 한참 뒤에야 답장 와. 웅 이 답장 하나를 몇 분이나 보고 있고.
유기연은 이민역한테 저렇게 연락이 왔을 때, 한참을 고민했다. 왜? 왜 하필 그러고 나서? 근데 유기연이 어떻게 할 거야. 진짜 형이 바쁜 걸 수도 있는데 형한테 따져 물을 거냐고. 그냥 웅. 이런 답장만 보낼 수밖에 없었어.
